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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레이는 천동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저서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을 통해 지동설을 설파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에는 종교 권력에 대항한 과학의 순교자 정도로 인식하곤 하는데, 여기에는 어느 정도 과장이 있다. 자세한 건 천동설 문서로.

    스스로 망원경을 만들어서 천체를 관찰했으며 목성 위성 4개를 비롯한 수많은 위성과, 토성 고리의 발견자이기도 하다. 또한 금성의 위상 변화도 관측했다. 당시 파도바 대학교의 수학 교수이던 갈릴레오는 목성의 4개 위성을 메디치 가문에 전해오는 상징과 결합시켜[20] 궁정의 후원을 얻었다. 참고로 그때 갈릴레오의 연봉은 토스카나 대공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학계에는 신학/철학/수학으로 나눠지는 일종의 위계 질서가 있었다. 이중 수학자는 카스트 수준의 하위층(?)으로, 단적으로 말해서 수학 교수는 다른 교수들과 봉급이 8배까지 차이 났다. 갈릴레오는 수학 교수였고, 이 때문에 갈릴레오가 발표하는 천문학 주장들은 다른 학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더욱이 천문학은 신학/철학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오직 신학자나 철학자만이 다룰 수 있는 학문이라는 고정관념까지 있었다. 이 때문에 갈릴레오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얻으려 했고, 결국 "토스카나 대공의 수학자 겸 철학자"가 되었다.


    그 외에도 최초로 온도계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기압 때문에 정확한 온도는 측정하지 못하여 유용하지는 않았다.

    잘 알려진 건 아니지만 요새 건축 능력이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